아렌트가 말한 작업과 일의 차이점 비교

아렌트가 지적하는 것은 작업, work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일을 한다는 것과 work, 노동한다는 것은 조금 어감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를 자꾸 얘기해서 미안하긴 한데, labor라는 것이 '노동'이라는 단어인데, 이것이 동사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동사로 쓰일 때는 어떤 의미가 되느냐 하면, 여성이 아이를 출산할 때, 다시 말하면 아이 낳는 일, 출산을 labor라고 합니다. 그래서 labor를 한다는 영어 단어의 표현은 '아이를 낳는다. ' 그런 의미가 됩니다. 출산한다는 것,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요? 제일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고통이죠. 그러니까 labor는 아주 수고로운 일이라는 의미가 본질적으로 개입돼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work, 일은 그와는 좀 다릅니다. labor가 생존과 연관이 돼 있는 것이라면, 이 work는 생활과 연관돼 있습니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들, 집, 가구, 자동차, 옷 이런 것들은 작업의 산물로 우리가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당장 배고플 때 밥 먹을 돈을 옷 사는 데 썼다면, 그거는 문제가 있죠. 물론 좀 참고 옷은 오래 입을 거니까 좋은 옷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굶어 죽을 지경에 되어 있는 사람이 밥을 안 사 먹고 옷만 사고 있다면, 그거는 이상한 겁니다. 굉장히 이상한 거죠.
노동과 일의 차이 비교
다시 말하면, 먹고 사는 것이 필수적이고 노동은 그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아주 직접적이고 긴급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업은 노동에 비해서 이런 긴급성이나 직접성은 떨어집니다. 그런데 그것과 달리 이 작업은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의 산물은 우리가 소비를 한다고 했습니다. 음식을 먹고 없애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작업은 이런 일회적인 소비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옷을 한 번 딱 입고 버리는, 요즘 그런 옷도 나오긴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옷은 한 번 사서 잘 입고 계속 반복적으로 입죠. 집을 지어서 한 번 쓰고 버려버리나요? 그럴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 작업의 대상, 작업의 산물은 소비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용의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옷이나 자동차는 consuming 하는 것, consumption의 대상이 아니라 use,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사용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서 계속 쓰는 것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냄비 또는 음식을 담는 그릇은 음식처럼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사용해야 할 사물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작업의 산물인 사용물, 이런 물건들은 내구성과 지속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사람이 어떤 물건을 만드는데, 이 만들어진 물건이 그 사람보다 오래 살아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박물관에 가보십시오. 도자기 같은 거, 도공보다 몇 백 년을 더 오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는 1,000년이 넘는 건축물도 있죠. 물론 거기에서 사람이 계속 사용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러나 적어도 어떤 멋진 집을 만들었을 때 그 사람의 수명보다 그 건물이 훨씬 오래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작업의 산물은 내구성과 지속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컵을 하나 샀는데, 이 컵을 깨트리지 않고 오랫동안 잘 써서 그것을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가능한 일이잖아요. 또 그 자식도 그것을 잘 쓰다가 또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3대에 걸쳐서 하나의 컵이나 또는 멋진 그릇을 잘 활용해왔다면, 꼭 그것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보관해두고 기념으로 둘 수도 있겠죠. 그러면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생존하다가 또 죽어서 이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더라도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물건은 이처럼 지속성과 내구성을 가지고 면면히 시간과 함께 가는 것이죠. 컵이나 그릇은 우리가 그런 상상을 하기 힘들지만, 우리가 집이라든지 어떤 공간을 구성하는 건물 또 그 공간 내에 들어가는 어떤 사물들이나 예술작품이나 이런 것들을 보게 되면, 바로 이런 것들이 한 지역 속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됨으로써 인간 사회에 지속성과 영속성을 부여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왔다가 없어지지만,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서 그 인간 사회를 지속성의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죠. 로마에 가서 보게 되면, 로마에 오래된 유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이탈리아 로마에 사는 사람들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현대 이탈리아인들과 함께 그 건물을 연상해서 볼 수 있는 그와 같은 이탈리아 또 로마라고 하는 그 지속성 속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거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작업이라고 하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이 작업이라고 하는 활동의 특성은 또 노동과 다른 측면이 존재합니다. 노동은 반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작업은 그보다는 훨씬 직선적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책상을 하나 만든다고 생각해 봅시다. 책상을 만들기 전에 책상을 만드는 나무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책상은 존재하지 않죠. 그런데 책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책상을 만드는 장인이 먼저 머릿속에 책상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 것인가 구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책상의 형태는 제일 먼저 그 책상을 만드는 사람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죠. 그다음에 이 머릿속에 들어있는 아이디어에 따라서 설계도를 만들 수 있고 다른 그림을 그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머릿속에 있었던 아이디어에 따라서 나무를 가공하고 또 거기에 못질도 해서 책상을 만듭니다. 그러면 처음에 책상을 만드는 일의 시작은 머릿속의 책상에 대한 구상이고요. 그리고 책상을 실제로 만드는 것은 이제 손을 사용해서 도구를 이용해서 책상 만들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책상 만드는 과정이 끝나고 나면 드디어 책상이 만들어집니다. 책상이 완성이 되면, 작업은 끝이 납니다. 그래서 이 작업이라고 하는 것은 반복적인 것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라고 하는 것이 명백하게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처럼 작업을 수행할 때 거기에는 자신의 생각을 넣어서 산물을 만들게 됩니다. 요즘 디자인이 바로 오늘날에는 작업자의 생각이 되겠죠. 그래서 이 작업자의 생각 그리고 작업자의 기능이 그 사물 속에 투입되면서 결국 나온 작업의 산물에는 그 작업을 한 사람의 개성이 들어가게 됩니다. 예술작품 또는 어떤 작업의 산물의 예술성은 바로 그 개인의 고유한 개성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개입이 될 때 비로소 형성이 됩니다.
노동과 작업의 차이점 구분
노동과 작업, 이 두 가지의 차이점. 이제 명백해 보이시나요? 보통 영어식 표현이긴 하지만, 노동은 몸으로 하는 것이고 작업은 손으로 한다. 물론 노동도 손이 들어가고 작업에도 몸은 들어가지만, 가장 특징적으로 얘기할 때의 노동과 작업은 이런 차이를 갖습니다. 그 속에 개입된 시간성도 다르고요. 한쪽은 소비의 대상이라는 점, 한쪽은 사용의 대상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 산물의 성격조차도 굉장히 다릅니다. 생산과 소비를 반복하는 데 있어서 개성이 개입될 요소가 참 적습니다. 그런데 이 작업의 경우에 있어서 개성이 투입되어서 형성된 개성이 오랫동안 보존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또 차이가 납니다. 이처럼 노동과 작업을 이런 식으로 아주 명료하게 구분했던 것은 한나 아렌트의 아주 흥미로운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구분에 대해서 현대 철학자 가운데 찰스 테일러라고 하는 캐나다 출신 철학자가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이분이 쓴 책 가운데 '현대사회의 불만'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이 있습니다. 아주 명저이고요. 짧지만 흥미로운 책이고 또 번역도 아주 훌륭합니다. 여러분, 기회가 되시면 꼭 한번 보시기를 권하는 책인데요. 찰스 테일러가 이 책에서 한나 아렌트의 구분을 높이 평가하면서 현대의 위기, 특히 환경 위기가 바로 이 두 가지의 구분이 흐려짐으로써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다시 말하면, 소비의 대상과 사용의 대상의 그 경계가 흐려져버렸다는 것이죠. 사용해야 될 것을 사용하지 않고 소비하는 것, 예를 들면 오늘날의 종이컵 또는 때때로 종이컵을 쓰지 않기 위해서 머그를 쓰거나 또는 텀블러를 쓰는데, 이 텀블러가 굉장히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 쓰지 않고 버리게 됨으로써 오히려 종이컵 쓰는 것보다 더 환경을 심하게 훼손할 수도 있게 되죠. 왜냐하면 이 소비되고 있는 종이컵 대신에 이제 텀블러를 이용해서 사용을 하자고 했는데, 사람들의 의식이 이 텀블러까지도 소비의 대상으로 간주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한 대여섯 번 쓰다가 텀블러를 버리게 되면, 차라리 종이컵 다섯 개를 쓰는 게 환경 파괴에는 훨씬 더 적은 손해를 끼치게 되겠죠. 이처럼 소비와 사용의 대상이 흐려지는 것, 물건을 만들어서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쓰고 새것으로 바꾸고 버려버리는 것. 그래서 이 현대사회가 그야말로 소비자 사회, consumer's society가 되는 것이 바로 이 환경파괴의 심각한 문제를 이끌어내는 우리 의식의 문제점이라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면, 생활의 필요에 따른 활동을 우리는 작업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작업의 생산물은 항구성과 지속성을 가집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개성이 들어갑니다. 우리가 보통 '작업인'이라고 번역하는 라틴어 표현 homo faber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작업의 경우를 얘기합니다. 노동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소비의 대상이 되는 물건을 만들어내고 아주 긴급한 어떤 필연성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 두 가지를 구별하는 것이 오늘 했던 아주 중요한 관점 중에 하나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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