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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교양, 정치, 철학,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의 생애

한나 아렌트의 생애

한나 아렌트의 생애
한나 아렌트의 생애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가 우선 그래도 한 학기 동안 같이 공부하게 되니까 시작하는 오늘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는 아주 두꺼운 평전도 이미 나와서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고요. 한나 아렌트는 대단히 매력적인 사상가로 전 세계의 여러 곳에서 공부가 되고 있고 또 그의 책도 많은 언어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이고 여성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강조하는 이유는 첫 번째, 유대인이라고 하는 그 특성이 사실 유대인의 특성으로 철학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유대인과 오히려 대입하는 생각을 많이 드러내서 유대인 사회에서도 상당히 문제적인 인물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집단 가운데 양심적인 유대인들 그리고 상당히 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정치 문제에 대해서 이스라엘이나 유대인 다수의 정치적 행태에 대해서 비판적인 언급을 하는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성이라고 했는데, 오늘날 여성주의 철학이 많이 발전해 있지만 그 관점에서 보면 한나 아렌트는 그다지 여성주의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 한나 아렌트의 철학에 대해서 처음에 여성주의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좀 실망을 하죠. 그런데 오히려 한나 아렌트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여성주의자들이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을 들여다보면서 새롭게 여성주의를 발전시키는 모티브를 얻고 많이 활용을 하게 됩니다. 한나 아렌트가 태어난 해는 1906년입니다.

유대인 한나 아렌트

우리가 '유대인'이라고 하면, 이런 생각을 갖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유대인의 의식화 교육을 많이 받고 그리고 어려서부터 유대인 신앙을 아주 철저하게 교육을 받고 또 이스라엘의 열심히 배우도록 교육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독일계였고요. 그리고 독일에서 이미 독일의 주류 사회로 편입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한나 아렌트에게 전혀 유대 인성이나 유대인적인 어떤 것을 강요하거나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어린 한나 아렌트를 유대인 회당으로 가끔씩 데리고 가기는 했으나 그 이상 특별하게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유대인 의식을 훈련을 받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어린 시절도 여러 가지의 파란만장한 일들이 많이 있는데요. 결국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 자격시험을 봅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철학 책을 접하기 시작해요. 그래서 상당히 조숙한 정신적 성숙을 가졌던 여성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18살 때 독일의 마부르크 대학에 입학을 합니다. 이 당시의 마부르크 대학은 철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거기에 루돌프 불트만이라고 하는 신학자가 있었는데, 이 불트만과 마틴 하이데거라고 하는 철학자가 아주 친한 친분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스터디도 하는데, 그 중요한 텍스트가 성경의 특히 요한복음이라고 하는 부분을 둘이서 집중적으로 그리스 원전을 가지고 공부했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마틴 하이데거의 사상, 특히 '존재와 시간'이라고 하는 아주 역작이 있는데 그 '존재와 시간'의 핵심 내용이 기독교적인 그리고 로고스라고 하는 사상이 담겨 있는 요한복음의 사상과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아렌트가 1년 동안 바로 이 마부르크 대학에 가서 하이데거 밑에서 공부하면서 그에게서 배웠던 사상이 바로 마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맥락 속에서 그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를 잠시 읽어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언급을 드렸습니다. 마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의 연애 사건은 굉장히 유명한 사건입니다. 1년 동안 짧게 거기에서 있었지만 그야말로 스승과 제자, 아주 어린 여대생과 교수 사이의 연애 사건이니까 지금으로 얘기하면 아주 심각한 사건이 될 수 있겠는데, 그 당시에는 아마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다뤄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1년 동안 그 사건이 있고 난 다음에 결국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떠나기로 결심을 하고 그리고 하이델베르크의 유명한 철학자 칼 야스퍼스에게로 가서 철학 공부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이 두 인물은 대단히 비교가 될 수 있는 사람인데요. 둘 다 실존주의 사상가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하이데거는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상 가고 야스퍼스는 유신론적 실존주의 사상가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을 보게 되면, 하이데거는 나치에 동조하는 길을 걸어가게 되고요. 물론 뒷부분에 가서 하이데거도 히틀러의 나치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긴 하지만, 초기에 있어서 히틀러를 지원하는 나치 사상을 찬양하고 연설하는 행태를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야스퍼스는 유대인 아내와 함께 독일을 떠나서 스위스 바젤에서 강의를 하면서 오히려 그곳을 벗어나 나치에 반대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패망한 다음에 야스퍼스는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 양심 독일인 역할을 하게 되죠. 그러니까 한나 아렌트는 흥미롭게도 하이데거에게서 공부를 하고 또 야스퍼스에게로 가서 철학 공부를 완성함으로써 이 두 사람의 사상을 나름대로 자기 속에서 종합하게 됩니다. 야스퍼스에게서 공부하고 난 다음에 철학박사 논문을 쓰게 되는데, 그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영어식으로 하면 '어거스틴'이 되는데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이라고 하는 주제로 철학 박사학위 논문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박사학위를 하고 난 다음에 교수 자격 논문을 다시 써야 되는데, 그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활동가들을 돕게 됩니다. 이 유대인 활동가들은 나치가 드디어 유대인을 압박하는 활동을 시작했고, 그래서 이 유대인들이 거기에 저항하는 활동을 하는데, 여러 가지 자료 조사라든가 이런 방식의 지원을 한나 아렌트는 하게 됩니다.

시온주의자?

이 유대인 활동가라고 하면, 우리가 아는 대로 시온주의자들을 얘기하는데요. 한나 아렌트는 시온주의자가 아니고 시온주의 운동에 개입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정치적인 행위를 하는 유일한 단체가 시온주의자 단체였기 때문에 그들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냥 독일 비밀경찰에게 체포를 당하고요. 7일 간 심문을 받습니다. 다행히 그때 심문을 했던 독일 비밀경찰은 그나마 아주 괜찮은 사람이었고, 폭력적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7일간의 기간이 끝나고 풀려나온 사이에 어머니와 함께 바로 짐을 꾸려서 프랑스로 도망을 치게 됩니다. 그래서 아렌트는 독일에서 나와서 프랑스에서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독일이 프랑스로 진격하게 되고, 프랑스에서는 독일을 위한 괴뢰 정부가 서게 되죠. 그러면서 프랑스를 압박하고, 특히 프랑스 안에서 거주하던 다른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에 대한 구속이 이루어졌을 때 한나 아렌트는 구르라는 수용소에 수감이 됩니다. 그러다가 그 안에서 탈출하게 되고, 1941년에 미국으로 망명해서 그 이후에 미국 시민권을 얻고 주로 미국에서 활동을 하게 됩니다. 1951년, 미국으로 망명한 지 딱 10년이 되던 해에 '전체주의의 기원'이라고 하는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이 책은 전체주의에 관한 본격적인 최초의 저술이었고 굉장한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그와 더불어서 또 많은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술하는 방식이 기존 사상가들의 저술 방식과 상당히 달랐고요. 그런 점에 있어서 찬반양론이 나뉘었지만, 이 책은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는 명저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전체주의 기원에서는 우리의 주제로 삼고 있는 '정치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이 주제에 대해서도 많이 다루고 있는데, 정치에 대한 정확한 개념 규정은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암암리에 전제되어 있는 정치 개념을 바탕으로 전체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1951년부터 몇 차례 개정판을 내기는 하는데 그 이후 1958년에 '인간의 조건'이라고 하는 본격적인 철학적 저술을 내고요. 이 책의 수준은 그렇게 어려운 수준은 아니고 일반인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수준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내면서 이 책에서 정치의 핵심적인 논의를 이루게 되고, 이 책의 내용이 오늘날 정치학계에 그리고 수많은 사람에게, 심지어 우리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정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 1960년에 '혁명론'이라고 하는 아주 탁월한 저술을 내고요. 이 책의 내용은 우리가 전체 강의의 뒷부분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1960년에 사건이 발생됩니다. 나치 전범 가운데 특히 유대인 학살에 책임이 있는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비밀조직이 체포해서 이스라엘로 압송을 합니다. 그리고 바로 압송한 사실을 발표하게 되죠. 이 소식을 듣자마자 한나 아렌트는 이미 계획이 되었던 대학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에 '뉴요커'라고 하는 잡지에 연락해서 “내가 당신들을 위해서 특파원으로 가서 기사를 쓰겠다. ”라고 약속을 하고 그 지원을 받아서 이스라엘로 가서 아이히만 재판을 취재합니다. 그리고 그 취재의 결과를 1963년도에 '뉴요커'라는 잡지에 게재를 하고 그것을 모아서 다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고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라는 부제를 붙여서 1965년에 이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이 책은 철학책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종의 재판의 보고서지만, 엄청난 양의 철학 논문과 저술을 생산해내는 아주 논쟁의 중심이 되는 그리고 널리 읽히는 저술을 내게 됩니다. 이 책의 핵심 개념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입니다. 그 이후에 한나 아렌트는 일종의 정치 평론가로서 '공화국의 위기'라는 책을 1970년에 쓰고요. 그 사이에 철학적인 논문을 '과거와 미래 사이'라고 하는 책으로 담아서 내게 됩니다. 1975년에 심장마비로 사망을 하게 되는데, 이분이 돌아가시면서 '정신의 삶'이라고 하는 3부작의 책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 1부와 2부만 원고 상태로 완성해놓고 돌아가셨습니다. 이분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지금까지도 이분이 남겨놓은 유고들을 모아서 계속 유고집이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