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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교양, 정치, 철학, 악의 평범성

의식 패러다임과 언어 패러다임 차이 -1-

의식 패러다임과 언어 패러다임 차이 -1-

의식 패러다임과 언어 패러다임 차이 -1-
의식 패러다임과 언어 패러다임 차이 -1-

한나 아렌트가 얘기했던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두 측면 그리고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이 두 측면 때문에 형성하게 되는 인간관계의 두 측면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지금은 그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라고 하는 사람의 '의사소통 행위 이론'이라고 하는 것의 한 부분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버마스는 독일의 사회 정치철학자로서 한국 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던 아주 탁월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입니다. 이 하버마스가 젊었을 때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을 보고 상당히 감동을 받고, 특히 자신이 얘기하는 소통 행위 이론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의사소통 행위 이론'이라고 하는 상당히 두꺼운 책을 하버마스가 쓰고, 이 책이 현대사회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었는데요.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 하나만 소개를 해서 우리의 논의를 조금 더 풍성하게 가져가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리면서 말이 가지고 있는 소통적 기능이라고 하는 부분을 말씀드렸는데요. 한나 아렌트가 얘기했던 말의 소통적 기능을 하버마스는 굉장히 넓게 풀어서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과연 이러한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이런 데 대해서 아주 깊은 주목을 하고 아주 두꺼운 책을 통해서 이론을 제시하고 또 다양하게 그 이론을 가지고 기존의 정치 철학이나 사회 철학을 펼쳐내고 해석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소통적 행위와 전략적 행위

그 중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 두 가지를 구별하는데요. 하나는 인간이 하고 있는 이 행위 중에, 다시 말하면 말로 하는 행위 중에 소통적 행위라는 게 있고 전략적 행위라고 하는 것을 구별해냅니다. 소통적 행위라고 하는 것은 상호 이해를 지향하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어떤 사람이 대화를 할 때 내가 소통적인 태도를 가지고, 마찬가지로 저 사람도 소통적인 태도를 가지고 대화에 임할 때 소통적 행위가 이루어집니다. 이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생각을 말로 표현할 때 그야말로 내 말을 상대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또 상대가 가지고 있는 말을 잘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를 가지고 언어 행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에는 말하는 것 외에 어떤 숨어있는 의도를 가지고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숨어있는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할 때는 그 말속에 담겨있는 말이 상대에 의해서 잘 이해되기를 바라는 것 외에 내가 말하는 의도를 알아차려서 다른 것까지 무언가가 나올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전략적인 태도입니다. 그것은 뭔가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접근해 들어가는 것이죠. 그런데 이 소통적 행위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말로 내뱉는 것 그리고 이 말속에 들어가 있는 것 이외의 숨겨져 있는 다른 의도가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소통 행위의 목적은 상호 이해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으로 전략적 행위라고 하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말하는 것 외에 숨겨져 있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말을 다 명료하게 하지 않죠. 예를 들어 제가 아주 나쁜 사람이어서 뇌물을 기대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뇌물을 달라'라고 하는 것은 너무 뻔뻔스럽고 싫은 거죠. 그러니까 '뇌물 달라'라고 말하지 않고 '요즘 우리 살림이 어려워서요. '라는 얘기를 엉뚱하게 끄집어냅니다. 그 말은 '돈이 필요하니까 좀 달라'라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죠. 그러나 속에 있는 말은 안 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런 뇌물을 받는 나쁜 일뿐만 아니라 전략적 행위는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좋은 측면에서도 충분히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이 전략적 행위라고 해서 나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장사를 할 때 우리가 가면 "이 물건을 깎아주세요. 돈이 없어요. "라고 할 때 진짜 돈이 없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이렇게 팔면 손해 봐요. "라고 얘기를 하지만, 그 손해 본다는 것이 진짜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표현을 하는 것이죠. 그랬을 때 말로 표현되는 것 외에 다른 의도를 서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긍정하고 가는 것이니까 장사치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나 내가 돈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나 이런 거래 관계에서 작동하는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서로 이해가 전제되어서 진행이 되는 것이니까 이런 것은 전략적 행위라고 해서 나쁜 것이라고 얘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분석적으로 보았을 때 소통적 행위는 상호 이해를 지향하는 것이다. 내가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가 나를 이해하는 데에 초점이 있고, 내가 의도가 있다면 이런 의도라고 충분히 말을 하고 그 의도까지 상대가 파악하게 하는 것입니다. 전략적 행위는 내 의도를 감추고 내가 하고 있는 이 말을 통해서 무언가 말 된 것과는 다른 결과를 의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특성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이 소통적 행위와 전략적 행위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이것이 오늘 이 말씀을 끄집어내는 이유입니다.

소통적 행위와 전략적 행위의 관계

소통적 행위, 전략적 행위는 그냥 둘 다 똑같은 성격과 지위를 갖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행위일 뿐인가? 아니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좀 더 근원적이거나 또는 한쪽이 다른 쪽에 의존하는 관계는 아닐까? 이 둘은 어떤 관계일까?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여기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제가 하버마스가 했던 이야기를 가져와서 설명하려면 앞으로 한 2시간은 설명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전략적인 행위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아까 말씀을 드렸지만, 비유를 들어서 조금 나쁜 경우를 전략적인 것과 연결시켜서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소통적 언어 사용, 소통적 행위하고 전략적 언어 사용은 마치 그 성격이 우리가 진실 되게 말하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 이 두 가지와 사실은 굉장히 구조적으로 유사합니다. 물론 똑같지는 않지만요. 한번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해서 사람을 속이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 거짓말쟁이, 남에게 거짓말을 해서 뭔가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사람이 자기의 그 거짓말을 성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리고 거짓말을 듣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이 어떤 태도를 평소에 가졌어야 했을까요? 한번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거짓말쟁이가 평소에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말만 했다 하면 거짓말입니다. 우리가 이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에게 속아 넘어갈까요? 평소에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 다시 말하면 거짓말이 성공하려면,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거짓말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행위를 보면, 반드시 거기에는 내 말을 믿게 하는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만 거짓말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아주 진실 된 말만 하다가 결정적으로 크게 거짓말을 한 번 했을 때 사람은 속아 넘어가는 거죠.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거짓말은 그것이 통하려면 평소에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이고요. 신뢰를 쌓으려면 진실된 말이 오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은 결국 거짓말 자체가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 가진 힘, 바로 이것 때문에 거짓말이 비로소 작동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럼 이 거짓말은 그 자체가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진실의 힘에 기생해 있다. 왜 그렇습니까? 거짓말은 드러나면 더 이상 거짓으로 기능을 못합니다. 우리가 거짓말인 줄 알면서, 나한테 들이 내미는 계약서가 가짜인 사기 계약서라는 걸 내가 알아버렸는데, 거기에 따라서 계약을 이행하고 돈을 주는 일이 벌어질까요? 그렇지 않죠. 그런데 진실은 어떻습니까? 이것이 진실이라는 것이 드러났는데 상대는 더 이상 이 진실로서 작동하지 않을까요? 나와 상대와의 관계에서요. 그렇지 않죠. 진실은 드러나면 진실로서 기능합니다. 거짓은 드러나면 더 이상 기능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짓은 항상 진실에 기생해서만 존재합니다. 기생충은 그 스스로가 양분을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숙주에 붙어서 양분을 빨아 머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처럼 거짓말도 진실의 힘에 기초해서만 기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소통적 언어 사용과 전략적 언어 사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통적 언어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기본적인 신뢰를 형성하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어떤 사물들이 오가는 전략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토대를 이루어집니다. 이 소통적 토대가 충분히 잘 이루어져 있으면, 전략적 관계도 아주 건전하게 잘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제도적인 관계와 소통적 관계

이 전략적 관계는 우리가 제도, 체계라고 얘기하는 그런 시스템이 돌아가는 영역입니다. 그리고 밑에 바닥에 깔려 있는 소통적 관계가 형성해 주는 소통적 관계는 바로 인간 삶의 토대가 되는 그야말로 서로 신뢰가 이루어지는 그 토대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개는 함께 가는데, 사회에 따라서 바로 이 소통적인 맥락이 풍성하게 잘 형성돼 있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회가 있습니다.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체계, 체제는 필요합니다. 또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국가 간의 관계 속에서도 전략적인 관계가 형성되는데, 더불어 이 국가 간의 관계 속에 상호 신뢰가 구축돼 있는 관계가 있을 수도 있고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관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두 국가가 소통적 관계에 있으면 전략적으로 좋은 결과를 잘 맺을 수가 있겠죠. 예를 들어서 우리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또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어떻고요? 또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또 우리 남한과 북한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이 여러 관계 속에서 갖고 있는 소통의 토대. 이 부분은 상당히 다릅니다. 이 상호 신뢰의 토대가 형성되지 않았을 때의 국가 관계는 서로 전략적인 접근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가 굉장히 다른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남북 대화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상호 신뢰를 바탕에 깔아야 된다. 먼저 신뢰를 회복해야 된다. 이것이 남북 대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즉, 체제적인 또 제도적인 관계 속에서 결국 이 사회가 전략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 틀에서 전략적인 관계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소통적 토대가 튼튼하고 깊게 형성돼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우리 사회로 돌아와 봅시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들 간에 얼마나 이 소통적이고 상호 신뢰적인 토대가 잘 형성되어 있나요? 여러분, 100점 만점에 우리가 점수를 준다면, 우리 한국 사회의 바탕에 깔려 있는 이 신뢰 관계. 여러분, A 학점을 주시겠습니까? B? 혹시 F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우리 사회가 과거부터 F였나요? 아니면 우리 사회가 최근에 들어와서 급격히 나빠진 건가요? 우리 한국 사회가 한국 사람들이 살기에 정말 좋은 사회 그리고 이 국가가 국가다운 국가,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는 것은 단지 대통령이 바뀌고 누가 권력을 잡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풍요로워질 수 있는 바로 거기에 포커스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제도적인 측면을 이루고 있는 관계와 소통적 관계를 나눈 것이 바로 하버마스가 우리로 하여금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그리고 시민으로서 우리가 어디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냐. 물론 정치가들은 제도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겠지만, 우리는 이 정치를 생각했을 때 바로 이 소통적인 측면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된다. 어떻게 보면 시민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할 정치의 부분은 우리 시민들 사이에 형성되는 문화의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앞서 한나 아렌트와 더불어서 언어가 가지고 있는 표현적 특성과 소통적 특성을 나눴고, 그것이 이끌어내는 인간관계의 주관적인 측면과 객관적인 측면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하버마스는 한나 아렌트가 얘기했던 것과 반드시 결이 딱 맞지는 않지만, 우리한테 소통이라고 하는 문제 또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두 가지의 시각. 그래서 소통적 행위와 전략적 행위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가 한나 아렌트로 돌아와서 한나 아렌트의 정치적인 관점에서 본 언어의 특성을 마무리로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