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패러다임과 언어 패러다임 차이 -2-
우리 한국 사회의 현재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 '날이 서 있는 사회다. 우리 한국 사회는 날이 서 있다. ' 이런 표현 혹시 들어보신 적 있나요? 저는 체험적으로 정말 그게 많이 느껴집니다. 여러분도 공유하고 있는 느낌일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사회에 나가서 활동을 하는데 누군가에게 잘못 심기를 거슬리게 하거나 또는 무언가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이 단지 실수로 관용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탁 건드리면 그야말로 폭발해버리는,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극도로 조심하게 되는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옆에 있는 걸 잘못 건드렸는데, 그게 밀려서 옆에 있는 탁자에서 식사하던 분의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하게 변하더라고요.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어들더니 아주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입니다. 혹시 망가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죄송합니다. "라고 했지만, 사과를 그냥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아서 무언가 할 수 없을까. '라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핸드폰이 혹시 망가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거기에 물이 흘렀는데, 그 물이 핸드폰에 들어갈 이유도 없겠는데, 물이 들어와서 고장 났을 수도 있다는 위협적인 발언을 하면서 핸드폰을 만지작만지작 하더라고요. 다행히 그 핸드폰은 아무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순간은 모면이 되었습니다만 그리고 사과하는 것으로 잘 끝났습니다만, 그때 형성되었던 그 느낌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뭔가 조금이라도 말실수를 하거나 조금이라도 뭔가 건드리는 일이 있었더라면, 아마 폭발을 하고 저는 수모를 당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 상황에서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유사한 상황들이 최근에 들어서 굉장히 많이 발생이 되고요. 아주 사소한 실수가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발생하는 그런 경우도 보았습니다. 층간소음을 참지 못해서 남을 죽이거나 또는 조그마한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서 그야말로 줄에 매달려서 청소하고 있는 사람의 그 줄을 끊어서 추락해서 죽게 만드는 그와 같은 끔찍한 일들도 벌어지는 것이 우리 한국 사회의 현실입니다. 물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상한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인데요.
정치 작동에 따라 삶도 변한다
우리 시민들 사이에, 우리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는 이런 관계들이 이렇게 날이 서 있다면, 이 부분을 우리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인간의 logos가 작동이 될 때, 경제의 영역에서 작동이 될 수도 있고 또 polis라고 하는 것이 함께 작동하면서 인간관계를 이끌어가는 그 모습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걸 여기에 적용해보게 되면, 정치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logos가 우리 함께 사는 공동의 삶 가운데 바로 날이 서 있는 이 부분까지를 관리해 주거나 관여를 하는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의미가 됩니다. 'polis 속에 로고스가 활용될 때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동물처럼 살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라는 그림을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려주고, 한나 아렌트가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였을 때 바로 이 부분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들 현실 삶 속에서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주관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날카롭게 서 있는 이 날을 무디게 해 주고 서로를 이해하고 관용이 넘치고 풍요롭고 따뜻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주는 것도 정치가 주는 영향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부분이 정치가 무관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느냐가 이 부분의 삶도 변화시켜줄 수 있다는 것이죠.
객관적 관계와 주관적 관계
우리가 형성하는 객관적 관계와 주관적 관계가 있습니다. 이 주관적 관계는 객관적 관계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인간적 관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인간의 복수성을 가지고 얘기했던 인간의 '무엇 됨', 다시 말하면 인간이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있는 공통적인 특성이 함께 어우러져서 작동하는 부분과 인간의 '누구됨', 바로 주관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이 부분이 이렇게 발전되어 오는 이 전체가 함께 정치 속에서 서로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가 서로 다른 인간들이 모여서 공동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이 문제와 더불어서 작동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고요. 따라서 그 속에서 인간의 관계 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바로 정치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의 새로운 개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의 탄생성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인데요. 이 부분은 사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성 어거스틴에게서 나온 개념입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죠. 물론 우리가 윤회 등등 종교적인 얘기로 하면 여러 가지를 말할 수가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인식의 범위 내에서 본다면, 태어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 무(無)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했던 존재입니다.
정치의 핵심 - 끊임없이 말로 조정하는 과정
우리는 모두 무(無)에서 유(有)로 나타난 존재입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인간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탄생성이라는 말은 모든 인간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간 사회 영역은 항상 새로운 일들로 충만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새로운 일들이 인간관계 망 속에 들어가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말이 되면서 항상 새로운 다른 일로 일파만파 발생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사는 말씀드린 대로 새로운 일로 늘 충만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예측 불가능한 것이 바로 인간의 세상입니다. 오직 예측이 가능한 것은 '인간사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라는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사를 다루는 것이 정치라면, 이 정치는 항상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깜짝 놀라는 뉴스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다루기 위해서 또 서로 다른 관점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말하고 부딪힐 수밖에 없으니까 정치는 아주 중요한 특성을 여기에서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정치는 시끄럽다는 겁니다. 정치는 항상 끊임없는 말잔치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정치는 그것을 말로 조정하는 것입니다. 정치의 핵심은 이렇게 끊임없이 소란스럽고 말 많은 곳을 바로 말로 조정해나가는 작업. 그러니까 이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면, 정치를 없애버리면 세상은 조용해지겠죠.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 그런 말들이 나오지 않게 만들어버리면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세계가 정리돼서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은 사람다운 삶이 불가능한 세상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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