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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교양, 정치, 철학, 악의 평범성

정치는 인간의 아름다운 행위

정치는 인간의 아름다운 행위

정치는 인간의 아름다운 행위
정치는 인간의 아름다운 행위

2016년, 2017년 촛불 정국이 있었을 때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이루어지는 일련의 그 과정 속에서 가장 많이 언론에 인용되고 언급되었던 정치사상가가 바로 한나 아렌트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한나 아렌트를 전공해서 그런지 어떤 언론사가 저를 그것 관련해서 취재하겠다고 왔더군요. 그래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요. 이 인터뷰를 하는 기자가 제가 썼던 책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김선욱 교수 당신은 정치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고, 정치가는 추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는 글을 썼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왔습니다. 제가 거기에 대해서 답변을 드린 말씀은 뭐냐 하면, “현실에서 정치가 그렇게 아름답고 정치가가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표현한 말이다. 그리고 정치의 본질을 회복하게 되면 바로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촛불 정국, 그 일련의 사태가 한국의 정치가 바로 잡히는 과정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면, 보세요. 이것이 시민들의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이 정치가 바로 잡혀나가는 이 모습,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게 바로 정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사건이라고 저는 봅니다. ”라는 것이 저의 대답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여러 페이지에 걸친 잡지 인터뷰의 제목을 '정치의 아름다움을 위하여'라고 뽑았더라고요. 저는 너무 만족스러운 타이틀이었습니다.

현실 정치의 모습

우리 시대 정치의 현실, 현실 정치의 모습. 과연 그것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정치를 오직 정치적 지위, 다시 말하면, 대통령,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적 지위, 자리에 담겨 있는 권력 있잖아요. 그 권력을 어떻게 쟁취할 것인가. 그리고 일단 그렇게 쟁취한 권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서 이해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이해입니다. 또 그 과정 속에서 정치가들이 하는 정치 행위가 과연 어떤 모습이었나요? 그 속에서 나타난 도덕성은 높지 않았고 아주 낮은 도덕성만을 보였습니다. 또한 술수가 난무합니다. 그래서 우리 시민들은 정치에 대해서 아주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되고, '정치가 좋아야 할 텐데'라는 염려를 하면서도 실제 돌아가는 정치에 있어서는 '역시 그렇지.'라고 하는 어떤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좀 도덕적이거나 점잖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면 정치는 해서 안 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술을 먹거나 친구들하고 대화를 하다가 “야, 너 말도 잘하는데 정치 한번 해보지 그래?” 또는 어떤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 저 사람은 정치하고 있어. ”라고 말을 할 때 그 '정치'라는 말은 그게 빈정대는 표현이지 절대로 그 말이 '정말 잘하고 있다. 당신이 정말 잘해주기를 바란다. '라는 뜻으로 쓰고 있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정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정치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표현으로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치는 사실 시민들이 또 시민인 어떠한 사람이 정치적 지위에 들어가서 정치적 행위를 하고, 그래서 인간의 품위를 공적인 자리에서 드러내며 결국 우리 함께 다 같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 또는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치에 대한 올바른 길일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정치란 본래 더러운 것이 아니고, 정치는 인간적 행위고 인간이 아름답게 공동의 생활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와 같은 정치를 하는 사람은 협잡꾼이 아니고, 사기꾼도 아니고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치는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충돌의 현장에서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고, 그 가운데서 평화를 만들어내는 숭고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는 그런 이름이 아니고 아주 더러운 이름이고, 냉소적인 이름입니다. 그것은 정치 자체의 잘못이 아니고요. 정치 자체가 사악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치가 갖고 있는 오명은 정치를 빙자해서 가장 비정치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정치가들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비정치적인 목적이란, 다른 말로 얘기하면 사적인 이익, 자기만의 이익, 자기 집단만의 이익을 추구할 때 바로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몇 사람들이 모여서 열심히 숙덕 공론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낸 결과를 보니 '전부 자기들끼리 다 잘해먹기 위해서 한 것이더라. '라는 판단을 시민들이 가지게 될 때 '그래. 똑똑한 너희들, 다 해 먹어라. '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런 정치의 모습을 그대로 내버려 두게 되면, 시민들이 그냥 무력해서 또는 어떤 이유에서든 그걸 그냥 놓아두게 되면, 그들은 그들을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모든 사람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정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우리가 이해하게 되면, 앞서 우리가 잠시 언급했던 '정치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라고 하는 이해를 깊이 갖게 되면, 정치는 도처에 있는 것이고요. 정치가들만의 정치가 아니라 우리 시민의 일상생활 속에 정치는 항상 작동하게 되어 있고요. 그래서 이 일상적인 정치의 삶과 정치가들의 정치 삶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아가서 적극적인 연결점을 우리가 찾을 때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가 시민으로서 바른 인식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정치가 올바로 설 수 있게 될 때고, 정치라는 이름이 더 이상 냉소적인 이름이 되지 않을 때고요. 나아가서 '정치가'라고 하는 이름은 우리가 명예로운 이름으로 붙여줄 수 있는 호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