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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교양, 정치, 철학, 악의 평범성

정치 개념에 대한 기초적 이해

정치 개념에 대한 기초적 이해

정치 개념에 대한 기초적 이해
정치 개념에 대한 기초적 이해

'정치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치는 인간적 현상이다. '라고 하는 말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정치는 인간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인간적 현상이다. 인간의 일이다.'라고 얘기를 하면, 그러면 인간이 아닌 것과 구별을 해야 되겠죠. 그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를 얘기하면, 우리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니체가 이렇게 얘기를 했죠.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에 있는 존재다.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은 동물이 아니죠. 그런데 정치가 인간적 현상이라고 얘기하면,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정치는 동물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이 정치를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조정'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요. 그러면 이 갈등 조정이라고 하는 걸 하기 위해서 우리 인간이 정치를 활용한다는 의미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동물도 역시 갈등이 있잖아요. 그러면 동물이 하는 갈등 조정과 인간이 하는 갈등 조정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동물의 경우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갈등을 조정하지 않습니다. 거기에서는 힘의 각축이 있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문제의 해결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동물의 경우는 정치가 작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해서 갈등을 조정하는 행위는 정치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전쟁이라고 하는 것을 마치 전쟁의 연장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물론 그렇게 주장한 '전쟁론'을 쓴 유명한 사상가도 있죠. 그러나 전쟁을 쓰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이렇게 구별을 해서 우리는 정치라고 하는 것은 동물적인 어떠한 폭력적 행위와 구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편으로 신이 하는 것은 아닐까요? 신에게는 정치가 필요 없을까요? 신의 경우도 사실 우리 인간이 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 어렵지만, 신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신과 정치

첫 번째로 기독교나 유대교나 이슬람교에서 믿는 것과 같은 절대 유일신 개념을 가지고 보게 되면, 절대적 존재인 신에게서는 사실 갈등이라는 것이 없죠. 그러니까 거기에서는 정치라는 것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조금 다른 신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이 있죠. 그리고 그 신들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 신들 사이에서는 정치가 필요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화적인 이야기고요. 거기에 나오는 신들은 상당히 인간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세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치라고 하는 것을 거기에 개입시켜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 절대 유일신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보면 거기에서는 정치를 얘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의 포인트는 뭐냐 하면, 정치라고 하는 문제는 결국 인간의 문제고요. 그리고 인간이라고 하는 사실뿐만 아니라 '인간적이다'라고 하는 다소 가치 중심적인 관점에서 인간적인 현상이어야 한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두 번째는 인간은 공동생활을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는 바로 인간의 공동생활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생활이 마치 전능한 신들이 아무런 모순 없이 서로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생활에서 이루어진다면, 물론 거기에서도 정치는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공동생활은 절대로 그렇지 않죠. 이 공동생활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갈등입니다. 그래서 정치는 항상 갈등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이 갈등이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말을 통해서 조정이 된다고 하는 것이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동물적 행위가 아니라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언어를 통해서 말로 갈등을 조정하고 문제 해결에 접근한다는 점은 바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징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 있어서 정치의 특징은 말을 통한 행위의 조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공동생활을 통해서 경험하고 있는 갈등은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요? 그 갈등의 원인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바깥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재화의 부족이라든가 또는 갈등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이 갈등의 원인을 소급해 보게 되면, 우리 인간이 서로 다 다르다고 하는 그 부분에 갈등의 초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단지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 재화를 필요로 하고, 그 재화가 부족하다. 그러면 부족한 재화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런 문제만이 갈등의 초점이라면, 사실 지금과 같은 풍요로운 사회, 우리가 소비할 수 있는 총량이 생산할 수 있는 총량보다 적을 때는 이 세계에서는 갈등은 없어져야 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풍요로운 사회 속에서도 끊임없는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데, 그 갈등의 원인은 단지 재화의 부족과 같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서로 다르고, 이 서로 다른 인간들이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충돌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러면 이렇게 인간이 서로 다르다고 하는 이 단순한 사실을 우리가 우선 인간의 복수성이라고 하는 단어로 정리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인간의 복수성, 영어로 얘기하면 Human plurality입니다.

인간의 복수성의 의미하는 것

여기서 복수성이라는 말은 '내가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 ' 이런 의미의 복수가 물론 아닙니다. 처음에 제가 이 단어를 쓸 때 그렇게 연상하는 분들이 실제로 있더군요. 그것이 아니고 단지 우리가 영어 문법 공부할 때 '단수, 복수' 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복수입니다. 인간은 단수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만 의미하는 그런 단수 이기도하고요. 인간 전체로 봐서 모두가 다 똑같다면 거기에는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데,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항상 복수로 존재합니다. 이렇게 인간이 복수로 존재한다는 사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복수성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사실인 것이고요.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첫 번째, 우리 인간은 개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입니다. 둘째, 우리 인간은 개성을 표현하기를 바라는 존재, 그것을 드러내고 표출하기를 바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단순한 "개성의 부분을 억압당할 때 우리는 견디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개성은 단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도 아니고, 표현해도 그만 표현하지 않아도 그만이 아니고, 그냥 무시를 당해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러한 개성의 부분, 우리가 드러내기를 바라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바로 이 개성의 부분이 서로 충돌하고 의견의 방식으로 나타나서 대립하고 갈등할 때 정치가 필요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복수성을 구성하는 데는 우리 인간의 두 가지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우리 인간 사회에서도 보면 서로 비교 가능한 구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키가 크다. ', '키가 작다. ' 이것도 길이라고 하는 척도로 비교를 할 수 있죠. 그리고 몸무게도 그렇죠. 또 뿐만 아니라 사람에 따라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도 있고 노래를 좀 못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음치도 훈련을 하면 노래를 좀 부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보통 일반 사람이 아무리 노래 연습을 잘해도 아주 멋진 가수들이나 테너, 소프라노 같은 훈련받은 성악가들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그런 점에 있어서 훈련받아서 달라질 수 있는 것과 같은 차이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런 차이의 영역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돈을 내서 그림 그리는 훈련도 받고 노래 훈련도 받죠. 이처럼 서로 비교 가능하고 연습을 통해서 달라질 수 있는 그런 영역을 가리켜서 우리가 '무엇 됨'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영어로 What-ness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이지? 그 내용이 어떻게 다르지? 어떻게 비교가 될 수 있지?'라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 심지어 시험을 보고 테스트를 해서 점수를 부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소위 줄 세우기를 하는 것이죠. 이런 줄 세우기가 이루어질 수 있는 영역이 반드시 있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바로 이 부분을 우리가 인간의 여러 부분 중에서 '무엇 됨', 비교 가능한 그런 부분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노래의 색깔이 다를 수 있죠. 음성, 음색 이런 것이 다 다릅니다. 사람마다 또 각자 고유한 음의 바이브레이션이 있습니다. 이런 음의 진동은 사람마다 다 다르고요. 심지어 범죄적인 장면에 있어서도 그 사람의 음성을 가지고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아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걸 가지고 서로 다른 요소를 이것은 더 나은 것이고 못한 것인지를 가르기는 참 어려운 것입니다.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개성적인 부분인 것이죠. 이것은 '무엇'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누구냐, 그가 어떤 사람이냐'라고 하는 것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누구 됨'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 인간의 복수성을 구성하는 두 요소, 하나는 '무엇 됨', 하나는 '누구 됨'이 있고요. 이 두 개가 어울려서 한 사람의 개성을 구성하고, 이렇게 구성된 개성이 수많은 개성으로 어우러진 공동체를 만들어서 공동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발생하는 이 갈등이 바로 이 두 가지의 요소가 얽힘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임을 우리가 보게 되고요. 바로 정치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을 통찰하고, 특히 그 '누구 됨'의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 발생하는 갈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약을 하게 되면, 정치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다르다고 하는 그 사실로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한 정치라는 것은 필수 불가결하고 결코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정치는 정치가들만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공동생활을 하는 작고 큰 모든 집단에서 정치는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정치가 어떻게 다뤄지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들여다보아서 이해할 문제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