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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교양, 정치, 철학, 악의 평범성

정치 개념에 대한 어원적 이해

정치 개념에 대한 어원적 이해

정치 개념에 대한 어원적 이해
정치 개념에 대한 어원적 이해

우리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연결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관심을 갖습니다. 이 문제는 사실 상당히 복잡한 문제니 까요. 그리고 20세기, 21세기 들어와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애를 쓰는 문제이기도 한데요.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다뤄볼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들어가서 아주 원형적인 모습으로 경제와 정치 또는 우리 인간의 경제와 관련된 삶의 모습 그리고 정치와 관련된 인간의 모습, 이 두 가지를 비교해서 '정치가 무엇인가?'라는 데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경제는 oikos, 즉 가정과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정치는 polis라고 하는 고대 도시국가와 연결이 됩니다. 이 도시국가는 이름처럼 하나의 국가와 같은 정치 체제이기는 한데요. 그 규모가 한 수천 명 정도, 4-5,000 정도의 자유민으로 구성이 된, 그러니까 실제로 다른 딸린 가족들을 생각하면 규모는 조금 더 커지겠죠. 그런 정도. 다시 말해 우리 한국으로 얘기하면, 아주 작은 도시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polis라는 단어를 번역할 때 '도시국가'라고 이름을 써서 번역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oikos와 polis가 아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일단은 말씀드렸는데, 무엇이 다른가? 그러면 우리가 구별을 할 때 이 polis는 oikos에서 다루지 않는 것을 다루는 영역이라고 일단 생각을 해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인 문제의 뿌리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인데요. 이 생존과 관련돼 있는 경제적인 문제는 oikos를 바탕으로 두고 있는 마을 단위에서 또 그것이 국가 전체의 단위로 온다고 하더라도 이 자체를 polis에서는 다루지 않는 문제로 구별이 되고 구분이 됩니다. 그러면 polis에서는 무엇을 다루느냐? 여기에서는 개인적인 문제 또는 어떤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벗어난 모두의 문제, 공통의 관심사가 거기에서 다뤄집니다. 그런데 이 공통의 관심사가 다뤄질 때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다루느냐가 바로 정치적인 것과 정치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구별될 수가 있겠습니다.

polis를 통한 인간다운 삶

우리가 이 polis를 통해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zōion politikon, 즉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라는 말을 썼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이죠. 다시 말하면, polis에 참여하지 않고 경제적인 문제에만 종사하는 사람. 이것은 사실 인간다움의 본성을 제대로 실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polis는 어떤 모습 때문에 그럴까요? 우선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logos라고 하는 것이 여기에서는 좀 다른 방식으로 작동을 합니다. 아까 경제 얘기에서와 마찬가지로 logos적인 부분, 다시 말해 인간의 이성이 작동을 해서 좀 더 낫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경제가 가동이 되는 것은 맞죠. 그런데 이 polis로 들어오게 되면, 인간의 logos라고 하는 것은 그냥 단순한 생존의 차원을 넘어서 훌륭한 삶, 바람직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작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개인으로 살 때에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그리고 단지 경제에만 몰두했을 때는 좀 더 많은 부, 좀 더 많은 물질적인 풍요에 포커스를 두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관계를 생각했을 때 여기에 logos가 개입되면 우리의 삶은 어떤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인간의 삶으로서 질적으로 차별화되는 훌륭한 삶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삶이 가능하게 되고, 어떤 새로운 지평이 우리의 삶에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라고 하는 그 말을 쓴 바로 다음 절에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인간은 logos의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 또는 '인간은 logos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 zōion logon eckhon이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logos는 이성을 의미하기도 하고 이치를 의미하기도 하고 법, 이법, 자연의 이법, 인간이 만든 법이 아니고 자연 본래 속에 들어있는 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logos는 역시 또 말을 의미하고 언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logos라고 하는 단어가 동사 형태로 쓰이게 되면, legein이라는 단어가 되는데 이것은 '말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라는 말에 이어지는 'logos 능력을 가진 동물이다. logos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라는 말은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인간은 말을 사용하는 동물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이 정치라고 하는 말의 핵심 속에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 말을 사용하는 능력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olis 속에서, 다시 말하면 함께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 속에서 언어를 사용해서, 말을 통해서 서로의 삶을 조정하고 또 서로의 삶을 나눌 때 선과 악이 나뉘고, 옳고 그름이 나뉘고 그 속에서 좋은 삶과 나쁜 삶이 나눠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polis라고 하는 인간의 공동 삶 속에서 logos를 사용하지 않게 되면,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는데요. 그런데 역시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과 같이 logos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polis적인 삶을 떠나서 logos를 발현하게 되면, 이러한 모습의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게 또 다른 동물과는 차별화가 되는 아주 사악한 동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지혜와 탁월함을 쓰도록 logos라고 하는 그런 좋은 것을 갖고 있지만, 그러나 polis 속에서 이것이 잘 활용되지 않고 polis 밖에 나가서 동물처럼 이것을 쓰게 될 때는 인간에게 이 logos는 엄청난 무기가 되고 아주 쉽게 나쁜 목적을 위해서 쓰일 수 있는 그런 도구가 되어 버립니다.

인간은 logos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할 때 그냥 단순히 맨 몸으로 나쁜 짓 하는 것과 아주 엄청난 무장된 형태로서의 나쁜 짓을 한다고 보면, 이 두 가지는 그 나쁜 짓의 결과가 굉장히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단순히 동물과 logos를 가진 인간이 이런 불의(不義)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다시 말해서 logos를 가지고 저지를 수 있는 불의는 가장 다루기 어려운 아주 위험한 그리고 큰 규모의 악을 저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보게 되면, 인간이 저질렀던 수많은 잔혹한 사건들. 바로 이것은 인간이 logos를 사용해서 정치가 아닌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활용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인간의 이 logos가 잘 활용이 되고 인간다운 공동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영역으로서 polis가 필요하게 됩니다. 인간은 logos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logos는 가장 경제, 다시 말하면 oikos 속에서도 잘 활용이 될 수 있고요. 또 마찬가지로 polis 속에서도 활용이 될 수 있고요. 그러나 이 polis적인 장치를 벗어나서도 활용이 될 수 있는데, 바로 인간이 이와 같은 logos를 공동의 삶 속에서 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좋은 삶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 바로 이것이 정치가 추구하는 모습이 됩니다. 그래서 이 정치는 공동이 생활하는 polis 속에서 일어나는 일, polis를 다루는 일. 바로 이것이 정치의 핵심이고요. 따라서 이 정치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인간 본성의 발현입니다. 동물적인 것도 인간의 본성이라면, logos를 사용해서 polis를 구성하는 것도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를 통해서 더불어 사는 삶에 필요한 정의, 윤리를 구현할 수 있고 또 개인으로서, 단체로서 좋은 삶을 구성하는 것. 바로 이것이 정치가 지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민으로서 정치를 생각했을 때 바로 이처럼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 polis, 공동체적인 삶 속에서 우리의 이성, logos 그리고 이것이 구현이 되는 언어를 통해서, 말을 통해서 정치가 이루어지고 가꾸어지고 또 그것을 위한 많은 노력이 기울어짐으로써 우리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하고 한나 아렌트가 전적으로 수용하는 정치 개념의 바탕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