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히만에게서 결여되었던 자기검토와 생각에 대하여
우리가 아이히만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아이히만은 악행자가 맞습니다. 악한 일을 했습니다. 그 행위의 결과는 아주 심각했습니다. 그가 제도 속에 있었지만, 그가 그 제도 속에서 했던 역할은 생각 없는 기계와 같았고, 그 결과가 심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제도와 사회로 또는 어떤 악마적인 힘으로 책임을 돌리지 않게 된다면, 아이히만의 경우에서처럼 우리가 도덕과 관련된 또는 악행과 관련되어서 짚어보아야 할 점은 바로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끔찍한 결과가 나왔는데요. 그러면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 예외 없이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는 능력이 있는가? 그가 조직 속에서 그런 식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고 그냥 인정해버릴 수는 없는가? 오히려 인간은 조직 속에서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우리는 정말 모든 인간에게 그렇게 책임을 물을 만큼 모든 인간은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원래 주어져 있는가? 지금과 같이 우리가 경험하는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이런 질문이 심각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아까 엄중한 독재가 이루어지거나 제도적으로 폭압적인 정권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이런 질문은 심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 가운데 한나 아렌트가 생각의 문제를, 다시 말하면 도덕, 악행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연관을 지었다는 점에 있어서 우리는 주목을 해야 합니다.
도덕과 자기검토
소크라테스의 말을 앞서 제가 인용을 했습니다. "자기 검토, 자기반성이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 그러니까 아이히만은 바로 그와 같이 가치 없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도덕과 연결되어서 도덕의 문제를 건드리는 생각의 핵심은 자기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저 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우리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자기를 돌아보게 되면 모든 인간은 돌아보는 자기와 돌아봐지는 자기, 이 두 개의 자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의 존재지만, 그 하나의 존재 속에 내가 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 속의 둘인 존재라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이야기를 합니다. 영어로 two in one.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도덕은 바로 그 하나 속에 있는 둘이 서로 모순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행을 저지르게 되면 그 모순을 견딜 수 없어야 됩니다. 그 모순을 견딜 수 없는 자는 악행을 더 이상 저지를 수 없겠죠. 그런데 아이히만은 그 모순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히만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까요? 원래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철학이나 도덕이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아이히만의 경우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치에 협력을 하고 그 조직 속에 들어가서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에 그것을 돌아보면서 생각하기를 중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행하고 있는 그 일의 의미를 물어보는 것을 의지적으로 종료해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유 능력은 말씀드린 것처럼 계산이나 인지능력이나 문제처리 능력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유가 모든 독단에 반대하고 과거로부터 내려온 인습이나 또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어떤 명령에 대해서 거부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뿌리가 됩니다. 그런데 이 사유가 드러나는 것이 언어인데, 한나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의 언어는 아주 공허했습니다. 그것이 곧 그에게 사유가 결여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의 중요성
정리를 하자면 우리에게 생각이 중지가 되면, 물론 생각이 없다고 해도 여전히 계산을 할 수 있고 탁월하게 사회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 생각이 중지가 되면 판단능력이 상실되고 결국 현실 속에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거기에서 절대악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악의 평범성은 다른 말로 생각의 결여, 또 다른 말로 무사유를 의미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모든 악도 절대악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현대인의 바쁜 생활은 우리로 하여금 이와 같은 악의 평범성에 노출을 시킵니다. 평범하다는 단어를 썼을 때 그것은 곧 우리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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