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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교양, 정치, 철학, 악의 평범성

악의 평범성 개념과 도덕적 책임

악의 평범성 개념과 도덕적 책임

악의 평범성 개념과 도덕적 책임
악의 평범성 개념과 도덕적 책임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너무나 복잡합니다. 우리는 그 복잡하게 움직여지는 이 현대사회 속에서 하나의 기능을 담당하면서 우리의 먹거리를 해결합니다. 이처럼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나가 하는 일의 결과를 따질 필요가 있는가 생각합니다. 사는 게 너무 바쁩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는데도 바쁜데, 그 의미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자문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저 내 일만 잘하면 되는 것이고,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우리가 법만 잘 지키면 되는 거 아니냐.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히만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아이히만의 얘기는 잠시 제쳐두더라도 도대체 우리는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책임이란 나의 어떤 행위 혹은 내가 하지 않은 것, 다시 말하면 나의 비행위에 대해서 그 인과적 관계로 발생하는 모든 심리적 혹은 실질적인 부정적 결과의 원인이 내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서 보상적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내가 행위하지 않은 것도 나의 책임

이 말 가운데 내가 행동한 것뿐만 아니라 내가 행위하지 않은 것도 나의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행위의 직접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먼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물론 법적인 것을 따지면 꼭 이렇게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 돌아볼 때 책임의 문제로 관점을 바라볼 때는 바로 이런 것이 우리 속에서 작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생각 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면 우리는 성실한 악행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늘 우리 속에서 생각이 살아있어야 되고, 생각이 살아있기 위해서 우리의 말이 살아있어야 되고, 대화 가운데서 이 세상에서 돌아가는 일을 생생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에 따라서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됩니다. 물론 때때로 우리의 판단이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틀린다고 하더라도 판단을 내려 보고 그 판단을 다른 사람과 나눠봄으로써 내가 교정이 될 수도 있고 내 생각이 성숙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재판 결과가 아이히만에 대한 사형으로 끝났습니다. 이 재판 전체에 대해서 한나 아렌트는 몇 가지 평가를 내립니다. 첫 번째, 재판은 정의를 드러내야 하는데 이것을 일종의 교육을 장을 넘어서 하나의 쇼처럼 만들어간 이스라엘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 비판을 합니다. 그리고 판사들이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한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판사들이 내린 판결 내용에 대해서 한나 아렌트는 비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종 선고인 사형 판결에 대해서는 한나 아렌트는 동의를 했습니다. 사형에 대한 찬반들이 오늘날 많이 있지만, 그 당시에 아이히만에 대한 사형선고가 떨어졌을 때 전 세계에서 사형집행 반대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전쟁 범죄자에 대해서는 아마 사형 반대운동이 해당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부에서는 사형 반대를 이스라엘 수상에게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우리가 잘 아는 철학자 마틴 부버 같은 분도 사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사형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히만과 같은 사람은 죽여서 응보를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평생 동안 그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관점이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그러나 사형이 타당하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비록 아이히만이 대량학살의 조직체에서 하나의 도구처럼 기능적으로 행동한 것이 요구되었고, 그래서 그것이 그의 불행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아이히만이 대량학살 정책을 수행했고 또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가운데 그 일을 행했다는 것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데 아주 주목을 합니다. 결국 아이히만 그리고 이 나치의 전범들은 유대인들을 단지 유대인으로서 학살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주어졌던 법적인 보호 장치를 벗겨내고 그리고 나아가서 그들이 인간이라는 사실도 부정해버리고, 인간 이하의 상태로 그들로부터 이름과 그들의 존재를 완전히 박탈하고 단지 그들에게 부여한 숫자로서만 그들을 대우해서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들어서 학살했다는 점. 바로 이 점 때문에 유대인들이 범했던 이 범죄는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에 대한 범죄 또는 번역하기에 따라서 인간성에 대한 범죄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요. 바로 이것의 의미는 그 범죄의 성격이 인간을 인간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겨내어서 인간 영역 밖으로 내쫓아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 있어서 그 죄를 저질렀던 아이히만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함께 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 세계로 영구히 추방해야 된다는 취지에서 사형은 타당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아이히만과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도 없다는 점을 우리가 발견하기 때문에 바로 아이히만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주어진 명령에 따른 경우도 도덕적 책임?

주어진 명령에 따라서 열심히 수행한 사람에게도 도덕적인 책임을 또는 궁극적인 어떤 형태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독일이 통일되고 난 다음에 동독 지역에서 과거에 악랄하게 행동을 했던 비밀경찰들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 사면이 이루어졌고, 그들의 악행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들이 다 폐기되었습니다. 그것은 용서라고 하는 것이 통합의 과정에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군대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서 무장해제한 적군을 사살하는 명령을 수행해서 죽였다고 했을 때 그것은 전쟁 범죄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부지기수로 전쟁 가운데 일어날 수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꼬집어내어서 전쟁이 끝난 다음 또는 그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군사재판을 통해서 처벌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국가에서 그리고 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군대 조직에서 그런 일들을 그대로 용인하는 그와 같은 국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 국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무척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보게 되면 이런 책임을 묻는 사회와 묻지 않는 사회들이 서로 엇갈려 가며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와 저런 사회가 그저 다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는 한쪽 유형의 사회에서 다른 유형의 사회로 나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 역사의 발전일 테고요. 우리가 이런 것을 시민교육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고민하고 공부하고 생각해 보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